• 회원가입
  • 로그인
  • Home
 
 
 
 
 
 
 
 
 
 
 
  Home > 한도요소개> 보도자료  
 
시대일보 2021년 5월4일자 대한민국 명장 367호… 전통도자기 전시회 2021-05-11
 
http://www.sidaeilbo.co.kr/348023

한도 서광수 명장은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14세의 나이에 도예계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한 길 만 걸어오고 있다. 2021년 60년 동안의 도예인으로 도공의 혼과 열정을 선보이고자 한다. 서광수 명장은 흙가마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찬란한 우리의 전승문화를 계승해 오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을 해도 누군가는 찬란한 우리의 문화를 계승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서광수 명장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의 전통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를 한 명이라도 더 알리고자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다. 또한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그동안 그가 만들어왔던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히 소장해왔던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로서 그 의미는 사뭇크다고 하겠다.




◈60년 동안의 도예 열정



1961년 14세 어린나이에 도예계에 입문하여 기술을 배우던 중 1965년 명장 지순택 선생을 만나면서 새로운 도자기 예술세계의 눈을 뜨게 되 약 11년간 태토, 성형, 조각, 화공, 유약, 소성 등의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연마하였고 이 시기에 전 과정 기술을 인정받았다.


당시 일본으로 수출되는 도자기는 지순택요의 성형실장이었던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한, 그즈음 한국용인 민속촌 개관시 기술지원 위원으로 추대된 그는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여 주위의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결과 1974년도 지순택요의 그 어렵다는 소성담당(등요 : 흙가마)의 자리에 오르며 25세의 나이에로는 파격적인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소성이란 가마에 불을 지피고 초벌은 800도에서 900도 재벌은 1200도에서 1300도까지 열을 내주어야 제대로 작품이 나오는데 조금이라도 열의 온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성형을 잘하고 조각, 그림이 좋다하더라도 가마 안의 모든 작품은 한순간에 쓸모없는 폐기물로 전략한다. 아무리 20년 이상의 경력자라 하더라도 불의 움직임과 온도에 따른 변화 그날의 기후 또는 장작의 상태 등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평생 소성의 자리는 오르지 못한다. 그 후 고려도요에서 성형실장 소성 담당을 거치며 더욱 성장하게 되고 도평요 재직 10여년간 몸에 익힌 기술을 작품에 대한 영감과 열망으로 1986년 한도요를 설립한 그는 새로운 시도와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명기를 사장하고 있는 서광수 명장. 긴 수염의 모습에서 조선백자를 빚는 선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온 모습이 느껴졌고, 그의 눈빛에서는 도자기를 대하는 온혈의 광채가 발하고 있는 듯 했다. 오늘도 그는 도자기에 대한 꺼지지 않는 혼을 불사르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 산길로 접어들면서 오래된 작업실이 한 채 보인다. 도자의 고장 이천에서는 서광수 명장의 ‘한도요’가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 무형문화제 41호, 대한민국 명장 367호, 한국공예대전 심사위원, 무형문화재 보존협회 이사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은 그가 도자기를 빚으며 살아온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가마에 불을 지핀지 60년이라는 오랜 세월 속에서 불과의 씨름 속에 선조 도공들이 걸어온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아오고 있다. 열악하고도 척박한 여건 속에도 우리 민족의 성심이 깊이 용해되어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의 조화를 찾고자 魂(혼) 佛(불)을 쫓아온 선조 도공의 삶이야말로 그의 거울이며 자신의 삶이다. 그의 유백색의 백자 빛깔은 세계 어느 민족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정과 사랑이 녹아 있는 감성의 색이며 그 기에 조선 선비의 정갈함과 고귀함이 더해 조선백자 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전통 가마만을 고수



서광수 명장은 오로지 전통 가마만을 고집하는 명장중 한명이다.


“전통가마에서는 똑같은 작품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작품들이 나올 때 도자기의 참 매력과 맛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가스 가마를 쓰면 불 조절이 쉽고 편하게 많은 양을 구워낼 수 있어 생활 도자기를 만드는데는 제격이지만, 획일적인 색감과 똑같은 모양이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도자기를 얻을 수 있는 전통 가마를 고집한다.


그는 유백색의 색깔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백자의 빛깔을 빚어내는 유약을 개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백자 달항아리의 순백색을 가장 잘 낼 수 있는것도 흙과 불과 가마를 전통방식으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으로 해외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었다.


백자 달항아리는 유백색의 맑고 깊이 있는 색깔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되는 연구 끝에 1993년도에 꿈에 그리던 백자의 빛깔을 빚어내는 유약을 개발 국내와 일본에 발표하여 크나큰 반향과 찬탄을 받으며 국내외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 현지 기자들이 이천까지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국내에서 활동했던 탤런트 유민이 NHK방송에서 함께 찾아와 그를 취재해가기도 했다.


일본에서만 20차례가 넘는 개인전을 열 정도고 이를 계기로 매년 일본에 초청되어 전시회를 갖게 되고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해외에서 초청 전시회를 통하여 우리의 도자기 예술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했다. 작품연구 활동 중에도 틈틈이 공모전에 출품하여 공예품 경진대회 수차례 입상 및 전승공예 대전 동상 등을 수상하고 기능 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등 도자기 분야가 발전하는 모든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2001년 세계 도자기 엑스포 기술위원으로 위촉되어 세계도자기 엑스포가 성공리에 마치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서광수 명장은 자신이 왜 도자기를 빚는지 말하지 않는다. 단지 도자기를 빚고 불을 지피는 일이 그가 할 일이고 그의 삶일 뿐이다.




김명회기자 cdoll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