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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676호/ 12월1일자]2010-11-26 오후 9:54:48 / 송고 2017-08-02
 

완벽은 자연의 힘이다. 자연스러움이 인공의 차순이다. 완벽하게 빚어낸 도자기는 불의 영역에서 자신의 형체를 스스로 찾는다. “생각치도 않았던 작품이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는 것이 우리 도자기의 맛이다.” 도예가로는 처음으로 인간문화재가가 되고 명장이 된 서광수씨(63)가 도자기 인생 50년을 맞았다. 작품전을 위해 구워낸 자기는 대부분 처음 보는 형태와 색상이다. 평생 8만점 가까이 성형하고 구워냈다는 그도 처음 보고 느끼고 있었다.

흙과 불 - 혼으로 빚는 투박한 色의 세계


세계에 조선 백자의 美알려

도공 50년 - 인간문화재 지정

“자기는 공존하는 지혜 일깨워”



노란 호박색의 항아리. 그건 유약의 색채가 아니라 불의 조화였다. 또 다른 자줏빛 유약은 불의 영역에서 다양한 무늬를 그려낸다. 단지 호박색 달항아리는 유약을 두껍게 바르고 두 번 구워낸다. 유약이 불길 속에서 흘러내리며 그름이 그려지고 둥근 선이 나타나는 도자기의 멋은 가마속의 불이 주는 조화다.

“가장 인공적인 것이 가장 자연적이다. 단 영역을 지키면 된다.” 그의 경험은 달항리에서 실마리가 풀어왔다. 제작 과정을 그대로 보면 된다. 덩치 큰 항아리가 원래 발 물레질의 한계를 넘어선다. 선조 장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개의 둥근 바가지 형태로 성형을 만들고 이를 맞붙여 항아리 형태가 된 후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고 구워냈다. 불가마니 속의 두 원틀은 위 아래로 맞물려 고열의 불길을 받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결합한다. 결과는 약간씩 주저앉아 붙는 것이다. 강한 불길을 못 이기면 심하게 내려와 쭈그러지기도 한다. 너무 많이 내려앉으면 옆의 작은 도자기들과 붙어버리면서 마치 꿰어 찬 형태도 보인다. 이것이 도자기의 새 생명이다.

잘 붙어 큰 항아리가 성형된 것이라도 둥근 테와 곡선이 모두 제각각이다. “다르다는 것이 도자기의 생명이라는 점을 알아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묵직함과 둥근 선, 그 조화는 누가 결정할 것인가. 장인이 아무리 총력을 기울여도 조화는 자연의 영역이었다. “도자기에서 장작 가마가 왜 중요한지, 가스가마와 장작가마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이런 과정이 설명해준다.”

가스가마 자기는 획일성이 확연하다. 일정한 불길에 의해 인공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성형에서 기묘한 자연미를 주고 쭈그리거나 변형을 통한 자연미를 줘도 그건 인공일 뿐이다. 전통의 장작 가마는 이와 다르다. “가마도 독립적인 생명체이고 불길도 독립적 생명이다.” 가마 내에서 그 불길은 그들만의 힘으로 움직인다. 사찰 후원에서 공양간과 채공간의 불길 조절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불을 지피고 거리를 조절할 따름이지 불길 자체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사찰 음식의 관건이 불길에 있다고 본다. “공양은 불길을 한꺼번에 빼고 뜨거워진 가마솥 내의 끓은 물이 자체 온도로 밥을 익힌다.” 그 이유는 도자기 가마에서 불길을 다루면서 숙지된다. 물만 끓이고 쌀을 직접 불길로 끓는 건 아니다. 끓은 물이 쌀알을 독자적으로 익혀가야 밥은 완성된다. 자기의 흙알이 불의 혼으로 서로 결합하는 이치다.



자연이 주는 입체의 미학통해

‘다름’과 ‘조화’의 가치 엿봐

내년 ‘입문 50주년’ 회고전



투박해 보이는 전통 자기, 1960년대에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때 일본이 자연의 미에 눈 떴던 것 같다.” 당시 그는 거의 밤 샘 작업했다. 1965년부터 10여년 동안 막사발 청자 백자 등이 매달 수천 개씩 일본으로 수출됐다. 전통 가마에서 하루에 수백 개를 구워낼 정도였다. 일본 단체 관광단이 이천에 그가 일하던 지순택 선생 가마로 몰려들었다. 전성기에 그는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씨가 광주에 차린 ‘도평요’ 공장장으로 스카웃됐다. 거기서 다시 10년간 전통 도자기의 국제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가를 체감했다. “묵직함 터프한 맛, 무게감에 일본인들이 반했던 것이다. 중국의 깨끗한 색감에 화려함이 더해져도 우리 도자기에 비견되질 못했다.” 우리 전통 도자기를 모방하면서도 불의 혼으로 모양과 색깔이 나오는 기법만큼은 일본이 재현치 못했다.

그는 성형 단계에서 생각하지 못한 도자기가 소성(燒成) 후 가마 밖으로 나오는 것에 전통의 힘을 연결한다. 불과 흙이 만나 새 생명을 만드는 과정에 인간의 영역은 한정적이다. 장인의 성형은 경험의 축적이지만 소성에서 그걸 넘어 새 것을 창조한다. 발과 손, 전통 발 물레질, 두툼한 주둥이 그가 이를 고수하는 이유도 경험의 축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흙에서 도자기까지, 그 선 중간에 끼어있는 인간의 한정 영역에 경험으로 집중해야 자연의 힘이 도자기에 더 박힌다는 것이다.

조선 백자의 진가는 불의 혼을 입증한다. 아무 그림도 없는 무지백자는 구워진 후에 결함이 없다는 반증이다. 백자 색감처럼 일정하게 나오기 힘들다. “깨끗하면서 텁텁한 맛” 그가 요약한 백자의 맛깔은 욕심없이 스스럼없는 잔재주에 의존하지 않는 전통이 주는 따스함이다.

그는 무지백자 달항아리로 경기 무형문화재 41호가 됐다. 백자는 자연의 기법을 완벽히 살린 우리의 자랑이었다. 캐나다 몬트리올 전시회에서 그는 다시금 확인했다. 백자 청자 분청 등이 일본과 중국의 도자기와 같이 전시됐던 상황에서 우리 도자기는 형태 색상 문양 질감 등의 분야에서 모두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그 독창성이 보면 볼수록 심취하는 매력을 준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 쓰였던 계룡산 철화기법, 청자의 상감기법, 무 유약의 자연유 기법 등의 전통 도예 기법은 이미 세계인의 심성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종주국인 우리가 그 가치를 홀대하고 있었다.”

백자 항아리는 보이지 않는 힘이 온몸에 흐른다. “유순하지만 섬세함 강인함이 정지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형체”, 이를 두 성형 틀이 불로 구워지며 스스로 붙어가는 달항아리 족적은 철저한 자연기법의 고증이다. “장작가마를 열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만물이 각각의 생명을 잉태하듯이 도자기도 단 하나의 생명을 갖는다.” 장작가마는 회수율이 20%에 못 미친다. 장작가마가 왜 두려울까. 실패 확률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 불길은 가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실패를 봐야 그 힘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불길을 통제하려다가 스스로 힘의 느낌을 상실하고 만다. 그만큼 자연은 통제가 아니라 공존의 영역이었다.

1986년 ‘한도요’로 독립하며 다음해 전통미술공모전 특선이후 개인전과 일본 프랑스 중국 뉴욕 전시회를 연이어 가졌다. 출생지인 이천 신둔리 그곳 깊은 산으로 들어가 장작가마요를 만들었다. 연기가 인가를 피해야 했다. 장작은 폭설과 태풍이 지나간 후 강원도에서 구해 올 수 있었지만 땔감으로 쪼개는 일에 노동력이 엄청났다. 6형제 모두가 도자기로 입문하는 길도 그렇게 형성됐다. 사위까지 도자기 전공을 택하면서 가족공동체가 도자기로 모였다. 불교는 공동체에서 공감 폭을 확대하는 견인차였다. “성형은 새벽에 한다. 생각난 그대로 물레를 돌리며 성형을 한다.” 생각은 경험의 축적이지만 그 속에는 50년 전부터 만들어 온 전통 도자기가 모태이다. 전통 발물레는 발힘이 도자기에 전달되는 과정이다. 각개의 힘이 차곡히 도자기로 옹축되는 과정이 전통이란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한 사람의 손과 발로 빚어진 ‘백자다완’ ‘진사(辰砂)’ ‘분청(粉靑)다완’ 등 세 종류 다완(茶碗)을 손쉽게 놓고 보자. 같은 크기에 같은 형체라 비교가 쉬워 보기도 편하다. ‘백자다완’은 유순 섬세 강임함의 삼박자가 더 다가온다. 조선시대 흔했던 ‘분청다완’에서 자연의 한 측면에 다가가는 길을 본다.

변형과 창작은 언제나 한 갈래이다. 분청다완에서 불의 깊이를 느끼자면 너무도 다양한 색의 변화를 본다. 문양과 색감의 다양성도 무궁무진이다. ‘분청흑유용문다완’ ‘분청운학문다완’. 백자다완에서 문양이 연꽃이 필수다. ‘백자상감운문다완’ 이외 ‘백자양각연문다완’에서 연꽃 문양은 다양하게 변신하며 백자의 유순함과 섬세함에 가세한다.

그가 재현에 주력해 온 ‘진사다완’은 불의 혼과 씨름이다. 색감이 인간의 영역에서 전통의 몫으로 이양된다. 자줏빛 자연유가 불의 힘으로 흘러내려 그려진 그림이 다완을 감싼다. 불길이 그림을 그린다. 색상도 결정하고 그림 구도도 불이 결정한다. 호로병 모양의 ‘진사병’이 자연이 주는 그림을 보여준다. 인간의 그림이란 아무리 팔각에 그려도 평면이지만 자연의 그림이 입체가 원형이라는 구조적 차이를 확인시킨다.

입체의 도자기에 인간의 그림은 평면의 연장이다. 불길의 힘에 의해 36시간 구워진 도자기 그림은 입체에서 분절되지 않고 잘 연결된 완벽한 조화이다. 자연이 주는 전통의 입체 미학은 그렇게 도자기에 담겨있었다. 청자 백자 분청 청화 진사 진채를 기본으로 인화 음각 투각 문양도 그 입체 속에서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가 재현한 ‘청화백자연꽃문수반’은 연꽃의 입체미를 앞뒤 양면에서 비춰준다.

자연의 힘을 간직한 전통 도자기, 첫 걸음은 기교나 허식없이 해묵고 투박한, 그러면서 묵직한 조선조 그릇의 안주기심(安住其心)이다. 원인과 조건의 결합에 의한 생멸 구조인 ‘의타연생법(依他緣生法)을 전통 도공이 반야행인(般若行人)한다.

김종찬 기자 kimjc00@ibulgyo.com




서광수 씨는…

대한민국 도예명장 14호이고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이다. 도공으로 처음 인간문화재로 지정돼 ‘자기장(磁器匠)’의 칭호를 받았다. 내년이 입문 50주년이라 예술의 전당에서 회고전을 연다. 지순택 선생의 문하에서 성형장(成形匠)을 했고 도평요 공장장을 거쳐 전통 가마를 갖춘 한도요로 독립했다. 전승공예대전 동상,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경기도지사 표창, 국무총리상 수상 등 이외 일본의 이만리시장 야나이시장 등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일본 각지에서 도예전으로 주목받은 후 미국 프랑스 캐나다 중국 등 해외 전시회를 가졌다. 1994년 일본 세계도자기축제에 출품했고 2001년 이천 세계도자기 엑스포에도 출품해 국제 무대에 섰다.